자동차 뉴스

“불날까봐” 깎아줘도 안 사는 전기차, 없어서 못 파는 하이브리드

Skautohaus 2024. 9. 7. 05:02

▶ ‘전기차 포비아’ 확산 지속
▶내연기관차보다 화재 수 적지만
▶열폭주 현상에 막대한 피해 불러
▶배터리 화재 막을 대책은

▶ 배터리 소재 불연성으로 교체 등 안전 관련 연구개발 투자 늘려야
▶소비자는 하이브리드차로 이동
▶주문 후 1년 기다릴 정도로 인기
▶현대차 등 하이브리드 모델 확대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과 공포(포비아)가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달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차량 87대가 불타고 783대가 그을리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여파다. 벤츠 전기차 중고 시세는 신차 가격 대비 반토막이 났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선 전기차 출입까지 막으면서 사회적 갈등도 커지고 있다.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보다 많다고 할 순 없지만 일단 불이 나면 끄기 힘들어 피해가 크다. 그러나 다양한 기술과 전수 검사 등을 통해 예방도 가능한 만큼 막연한 공포는 과도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전기차 화재를 둘러싼 궁금증과 시장의 변화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1. 전기차는 내연차보다 불이 많이 나나.

아니다. 통계만 보면 전기차의 화재 발생 확률은 내연기관차보다 낮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9~23년 전기차 화재 건수는 157건, 내연기관차는 1만662건이다. 이를 등록대수별로 나누면 전기차의 화재 확률은 0.03%, 내연기관차는 0.04%이다.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도 10만 대당 전기차 화재 건수는 25건, 휘발유 차는 1,530건으로 설명하고 있다. 호주 연구기관인 전기차파이어세이프(EV FireSafe)는 2010년부터 지난 6월까지 전기차 열폭주(thermal runaway) 화재 511건을 분석, 전기차 배터리 화재 확률은 0.001%, 내연기관차는 0.1%로 추정했다.

 


2. 전기차 포비아는 과장됐나.

화재 가능성은 낮아도 일단 불이 붙으면 진화가 힘들어 막대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2022년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펠리시티 에이스호 화재 사고가 이를 잘 보여준다. 독일에서 벤틀리와 람보르기니 등 4,000여 대를 싣고 미국으로 향하던 이 배는 포르셰 전기차에서 시작된 불로 며칠 동안 화염에 휩싸인 채 표류하다 침몰했다.

전기차 배터리는 불에 잘 타는 소재들로 구성돼 있다. 특히 리튬이온배터리는 주행 거리가 긴 장점은 있지만 그만큼 전압이 높아 쉽게 과열되고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자체적으로 고체산소까지 품고 있어 불을 끄는 게 어렵다. 진화하려 해도 계속 열과 가연성 가스를 방출하고, 산소가 스스로 공급되니 다시 점화되곤 한다. 충전이 과도할 때도 불이 날 수 있다. 배터리 내부와 전자 부품 등을 연결하는 배선과 회로에서 단락이나 누전 등이 생겨도 화재가 발생한다. 교통사고가 나 외부 충격이나 충돌 시 배터리가 손상되면 폭발할 수도 있다.

3. 전기차 불은 왜 안 꺼지나.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안에서 발화가 되는데 배터리는 철제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어 물을 고압 분사해도 배터리 내부 불이 난 곳(화원)까지 닿을 수 없다. 배터리의 기본 단위인 셀(Cell)은 알루미늄 케이스 안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셀을 연결해 배터리모듈을 만들고 여기에 제어 및 보호 장치까지 합해 배터리팩을 구성할 때도 외부 충격 등을 방지하기 위해 밀봉과 방수 처리를 한다. 따라서 소방관이 아무리 물을 고압으로 쏴도 배터리팩과 모듈, 셀의 3중 외관을 뚫고 들어가긴 힘들다. 더구나 배터리팩은 차량 바닥에 설치되는 만큼 위에서 물을 퍼붓는 건 효과가 없다. 화재 시 먼저 배터리 상부나 하부에 구멍을 뚫은 뒤 그곳으로 소방수를 쏠 것을 권장하는 이유다.

4. 전기차 화재 막을 방법은 없나.

있다. 도칠훈 한국전기연구원 이차전지연구단 박사는 “불은 가연성 소재(연료), 산소, 불꽃(스파크) 등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춰야 일어난다”며 “3요소 중 하나만 차단해도 피해가 커지는 걸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터리의 가연성 소재를 불연성 또는 난연성 소재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송승완 충남대 교수 연구팀은 이미 2020년 불연성 소재로 이차전지 배터리의 전해액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 특허까지 출원했다. 송 교수는 “현재 이차전지 전해액으로는 불이 붙기 쉬운 카보네이트계 유기용매가 주로 쓰이는데 이를 불소(F)로 처리한 불연성 용매로 교체하면 화재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배터리관리시스템(BMS)도 주목된다. 결함, 불량, 충전 중 이상 감지, 미세 내부 단락 점검 등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화재 발생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5.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나.

전기차가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이다. 우리나라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7월 말 기준 62만 대 수준인데 중국은 이미 3,000만 대도 넘었다. 당연히 전기차 화재도 많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통계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중국 소방방재청이 2022년 1분기 신에너지차 화재를 640건으로 밝힌 기록은 확인된다. 중국에서 신에너지차는 대부분 전기차다. 연간으로 치면 2,560건, 하루 7건꼴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는 셈이다. 지난 6월 중국 국영방송 CCTV도 신에너지차 화재 발생률을 2021년 1만 대당 1.85건, 지난해 0.96건으로 보도했다. 지난달 초 후난성 창저우시에서 주행 중이던 중고 전기차에서 난 불, 지난달 19일 광둥성 후이저우시의 한 지하 주차장 전기차에서 발생한 화재 등 관련 보도도 끊이지 않고 있다.

눈길을 끄는 건 당국의 대응이 비교적 빠르다는 사실이다. 이미 2022년 3월 5개 부처가 공동으로 ‘신에너지 차량 안전 시스템 구축 강화’에 관한 지침을 발표하고 전기차에 대한 평생주기 안전관리를 시작했다. 특히 중국은 전기차 화재의 피해가 커지는 걸 막는 데 방점을 찍었다. 원인이 다양한 전기차 화재의 발생을 원천봉쇄할 순 없지만 작은 불이 연쇄 열폭주로 이어지며 폭발까지 가는 건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이 부분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안전 요구 사항’을 제조사에 강제하고 있다.

‘자동차화재안전연구소’도 설립한 중국은 전기차 안전과 관련된 데이터를 네트워크로 연결, 상시 모니터링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고 있다. 배터리 화재 초기 상황을 신속하게 감지해 운전자에게 알리는 장치의 장착도 권장하고 있다.

6. 전기차 포비아 극복 대책은.

이미 다양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우선 전기차 화재의 진실을 정확히 알리고, 과학적인 원인 분석과 이에 따른 대책을 강구하는 게 중요하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한국전기차협회장)는 “편 가르기식 상황 몰이는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며 “정확한 내용을 알려 전기차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기차 차주를 죄인 취급하거나 특정 국가 배터리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차별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김 교수는 화염 전이 속도와 열폭주를 낮출 수 있는 전기차 충전율 조정, 배터리셀 공급 시 3D 스캐닝을 통한 전수검사와 인증제 도입,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한 교육 강화, 배터리관리시스템 정보 공개와 배터리 상태 모니터링 앱 의무화, 전기차 정기 검사 기준 강화 등을 주문했다. 정부도 지하 주차장 스프링클러 시설 확대, 방화벽 설치, 경소형 소방차 도입, 전기차 충전 공간 모니터링, 화재 시 피난 매뉴얼 체계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7. 하이브리드차가 대세인가.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하이브리드차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현대 아반떼와 기아 카니발 등 일부 하이브리드 차종은 주문 후 1년 이상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현대기아차도 하이브리드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지난달 28일 중장기 전략인 ‘현대웨이’를 발표하며 “현재 7종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14종으로 확대하고,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도 전 차종에 하이브리드 옵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2028년 하이브리드차 판매 목표도 지난해 대비 40% 증가한 133만 대로 잡았다.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 배터리로 구동되는 모터를 합쳐 놓은 형태다. 휘발유 차 대비 연비가 2배 이상 돼 주행거리가 길고 소음과 고장은 적은 게 장점이다. 주행 중 자체 충전하는 시스템이어서 충전소를 찾아다니거나 충전 중 화재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런 하이브리드차를 처음으로 양산한 곳은 1997년 도요타다. 그동안 전기차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다. 내연기관 기술력이 높고 하이브리드 특허도 많은 도요타가 굳이 기득권을 버릴 이유는 없었다.

전기차는 충전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고 배터리 화재의 위험이 높다는 내부의 우려도 컸다. 최근 전기차 포비아 상황을 감안하면 선견지명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1,123만 대를 판매하며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를 기록한 도요타는 올해 2분기 하이브리드차 판매도 22%나 증가한 만큼 왕좌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포드 등 다른 자동차 업체도 일부 전기차 출시 계획은 취소하고 하이브리드 출시를 늘리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섰다. 또 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이 2일 독일 공장 폐쇄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전기차 캐즘과 포비아, 중국 저가 공세 등에 따른 자동차 시장 판도 변화와 구조조정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8. 전기차는 끝났나.

자동차 업체가 전기차 할인 판매에 나섰지만 소비자 반응은 차갑다. 전기차는 정부 보조금 등 국가별로 정책 리스크가 큰 것도 변수다. 근본적인 가격 경쟁력에 대한 의문과 안전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에 따라 당분간 대세는 하이브리드차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화석 연료를 쓴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의 궁극적 답이 될 순 없다. 전기차든 수소차든 다시 친환경차로 갈 수밖에 없다. 충전 인프라를 확충하고 전기차 포비아를 극복할 R&D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휘발성 액체인 전해질을 고체로 바꿔 화재 위험성을 없앤 전고체 배터리 개발도 포기해선 안 된다. 다만 전고체 상용화까진 불확실성이 큰 만큼 정부 차원에서 전적으로 매달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자동차 배터리 전문가는 “시장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부와 기업 모두 중장기적 안목을 갖고 꾸준히 투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처-미주 한국일보